사람, 철새, 자연이 공존하는 생명의 마을 (Designed by Spacecreator) 도심 속 숨겨진 보석을 마주하다 울산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설레는 마음으로 울산 시내로 진입하다 보면 맨 먼저 마주하게 되는 마을이 있다. 바로 삼호로와 남산로로 둘러싸인 길쭉한 삼각주 모양의 동네, 삼호동이다. 분주하게 흐르는 자동차의 소음과 복잡한 도심의 혼돈에서 살짝 비켜난 마을 안으로 한 걸음만 들어가 보면, 태화강을 뒤로하고 남산을 인자하게 바라보고 있는 매력적이 고 정겨운 풍경이 펼쳐진다. 겉보기엔 평범한 주거지 같지만, 그 안에는 울산의 역사와 자연, 그리고 주민들의 삶이 켜켜이 쌓여 있는 ‘도심 속의보석’ 같은 장소다. ‘삼호(三湖)’라는 지명에는 두 가지 흥미로운 유래가 전해진다. 하나는 사군탄(使君灘), 낭관호(郞官湖), 해연(蟹淵)이라 불리는 세 곳의 여울과 호수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다. 다른 하나는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과 관련된 애절한 설화다. 문수보살의 계시를 받고자 영취산으로 향하던 경순왕 앞에 문수보살의 현신인 동자승이 나타나 길을인도했는데, 이곳에 이르러 동자승이 갑자기 사라지자, 왕이 크게 세 번탄식하며 불렀다고 하여 삼호(三呼)라는 지명이 생겼다는 것이다. 천년 사직의 마지막 운명을 직감한 왕의 부름과 탄식이 얼마나 애절했을지, 그 깊은 울림이 오늘날 삼호동의 고요한 공기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듯하다. 산업화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다 지금의 삼호동이 형성된 배경에는 울산 산업화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있다. 1980년대 남구 용잠동 일대가 대규모 석유화학 공단으로 조성되면서, 공해를 피해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던 주민들이 집단으로 이주하며 만들어진 마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성된 지 4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마을은 점차 노후화되었고, 활력을 잃어갔다. 울산시는 이런쇠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7년 삼호동을 울산 최초의 ‘도시재생 뉴딜사업’ 대상지로 선정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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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립교향악단을 위한 울산 콘서트홀 상상 이미지 (Designed by Spacecreator) |
고별 연주가 남긴 깊은 울림
2023년 12월 22일, 울산문화예술회관 공연장에 울려 퍼진 울산 시립교향악단의 마지막 곡은 요제프 하이든의 교향곡 45번 ‘고별(Farewell)’ 이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자주 연주되는 곡이지만, 이날의 연주는 유독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지난 6년간 울산 시립교향악단의 예술감독 겸 지휘자로 활약하며 울산의 클래식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니콜라이 알렉세예프의 마지막 ‘고별 지휘’였기 때문이다. 그의 지휘 아래 울산 시립교향악단은 수준 높은 음악을 시민들에게 선물하며 문화도시 울산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각 도시를 대표하는 교향악단은 그 도시의 문화적 자부심이자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로 인식된다. 세계 3대 교향악단으로 일컬어지는 뉴욕 필하모닉, 베를린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단순히 음악 단체를 넘어 그 도시의 문화적 차별성과 우월성을 나타내는 표상과도 같다. 그리고 이런 거장들의 연주를 완성하는 것은 연주자의 실력만큼이나 중요한, 소리를 담아내는 ‘그릇’인 콘서트홀이다.
세계적 콘서트홀의 건축적 유산
매년 새해 첫날, 오스트리아 빈의 ‘황금홀(Golden Hall)’에서 열리는 빈 필하모닉의 신년 음악회는 전 세계 음악 애호가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축제다. 이 공연장은 당대 최고의 건축가 테오필 한센이 고대 그리스 신전을 모티브로 설계한 직사각형의 공간으로, 화려한 신고전주의 장식과 풍만하면서도 명료한 자연 음향으로 유명하다. 황금홀에서의 연주 실황은 전 세계로 생중계되며 빈을 세계 최고의 문화도시로 알리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된다.
반면, 베를린 필하모니의 연주홀은 기존의 정형화된 틀을 깨뜨린 혁신적인 구조로 주목받았다. 건축가 한스 샤룬은 무대를 건물 중앙에 배치하고 객석을 경사지에 조성된 포도밭 형태처럼 16개 구역으로 나눈 ‘빈야드 스타일(Vineyard Style)’을 선보였다. 음악을 공간의 중심에 놓고모든 청중이 동일한 조건에서 음악을 감상할 수 있게 한 그의 시도는 이후 세계 유수의 콘서트홀 설계에 전형적인 모델이 되었다.
극장 형식과 콘서트홀 형식의 본질적 차이
우리는 흔히 대규모 공연장을 모두 비슷하게 인식하지만, 건축적으로 는 ‘극장 형식’과 ‘콘서트홀 형식’으로 엄격히 구분된다. 울산문화예술회관을 포함한 국내의 많은 기존 공연장은 대개 오페라, 뮤지컬, 무용 등을 위한 극장 형식으로 건축되어 있다. 극장 형식은 무대와 객석이 ‘프로 시니엄 아치(Proscenium Arch)’라는 거대한 액자 프레임 형태의 벽을경계로 분리되어 있으며, 무대 뒤편에는 복잡한 장치들이 배치된다. 이구조는 공연자와 관객을 공간적으로 단절시키며, 특히 거대한 발코니 객석 구조로 인해 음향적으로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등 클래식 공연에는 한계를 지닌다.
반면 클래식 전문 콘서트홀은 오직 자연 음향을 극대화하는 데 모든초점을 맞춘다. 출연자 대기실 외에는 별도의 무대 장치 공간이 없으며, 무대 주변이 객석으로 둘러싸인 개방적인 구조를 취한다. 기계 음향에 의존하지 않고 잔향(Reverberation)을 조절하는 정교한 음향 설계가 공연장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
울산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제언
최근 공개된 [울산 세계적 공연장]의 네 가지 설계안이 보여주듯, 울산은 이미 새로운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그 무대의 성패는 결국 '소리를 담는 그릇'에 달려 있다. 국내에서도 클래식 전문 콘서트홀 건립 경쟁이 치열하다. 대구시는 기존 시민회관을 박스형 콘서트홀로 리모델링하여 ‘대구 콘서트하우스’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부산시는 2025년 개관을 목표로 빈야드 스타일의 대규모 콘서트홀 건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부산콘서트홀에는 지방 콘서트홀 중 유일하게 거대한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되어 독보적인 매력을 뽐낼 예정이다.
1990년에 창단된 울산 시립교향악단은 그동안 울산 시민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며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 왔고, 이제 창단 40주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제 울산도 진정한 품격 있는 문화도시를 구현하기위해 클래식 전문 공연장인 ‘울산 콘서트홀’ 건축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빛으로 도시를 그리는 [미디어 파사드]가 시각적 매력을 만든다면, 콘서트홀은 청각의 차원에서 도시의 정체성을 세계에 발신한다.
새롭게 지어질 공연장은 가능하다면 웅장하고 화려한 파이프오르간을 갖춘, 소리의 완벽함을 구현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문화와 산업이 공존하는 ‘균형 잡힌 도시(Balanced City)’ 울산을 향한 여정에서, 산업 분야에서 [BIG의 하이테크센터]가 미래 모빌리티의 얼굴을 그릴 것이라면, 문화 분야에서는 콘서트홀이 울산의 영혼을 담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 세계적 수준의 콘서트홀은 문화도시의 품격을 완성하는 가장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울산의 밤하늘에 울려 퍼질 완벽한 선율을 위해, 우리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