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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철새, 자연이 공존하는 삼호동 연가

  사람, 철새, 자연이 공존하는 생명의 마을 (Designed by Spacecreator) 도심 속 숨겨진 보석을 마주하다 울산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설레는 마음으로 울산 시내로 진입하다 보면 맨 먼저 마주하게 되는 마을이 있다. 바로 삼호로와 남산로로 둘러싸인 길쭉한 삼각주 모양의 동네, 삼호동이다. 분주하게 흐르는 자동차의 소음과 복잡한 도심의 혼돈에서 살짝 비켜난 마을 안으로 한 걸음만 들어가 보면, 태화강을 뒤로하고 남산을 인자하게 바라보고 있는 매력적이 고 정겨운 풍경이 펼쳐진다. 겉보기엔 평범한 주거지 같지만, 그 안에는 울산의 역사와 자연, 그리고 주민들의 삶이 켜켜이 쌓여 있는 ‘도심 속의보석’ 같은 장소다.  ‘삼호(三湖)’라는 지명에는 두 가지 흥미로운 유래가 전해진다. 하나는 사군탄(使君灘), 낭관호(郞官湖), 해연(蟹淵)이라 불리는 세 곳의 여울과 호수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다. 다른 하나는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과 관련된 애절한 설화다. 문수보살의 계시를 받고자 영취산으로 향하던 경순왕 앞에 문수보살의 현신인 동자승이 나타나 길을인도했는데, 이곳에 이르러 동자승이 갑자기 사라지자, 왕이 크게 세 번탄식하며 불렀다고 하여 삼호(三呼)라는 지명이 생겼다는 것이다. 천년 사직의 마지막 운명을 직감한 왕의 부름과 탄식이 얼마나 애절했을지, 그 깊은 울림이 오늘날 삼호동의 고요한 공기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듯하다. 산업화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다  지금의 삼호동이 형성된 배경에는 울산 산업화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있다. 1980년대 남구 용잠동 일대가 대규모 석유화학 공단으로 조성되면서, 공해를 피해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던 주민들이 집단으로 이주하며 만들어진 마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성된 지 4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마을은 점차 노후화되었고, 활력을 잃어갔다. 울산시는 이런쇠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7년 삼호동을 울산 최초의 ‘도시재생 뉴딜사업’ 대상지로 선정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

거장을 만나는 두 번째 미술관을 바라며

Kemper Art Museum, Washington University (Photo by Spacecreator) 미술관, 도시를 증명하는 공간 낯선 도시를 여행할 때 우리는 으레 그 도시의 대표 미술관을 찾는다. 그곳에 이름난 거장의 작품이 걸려 있다면 발걸음의 이유는 한층 분명해진다. 좋은 미술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한 도시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고 어떤 [ 문화적 수준 ]을 지향하는지를 보여주는 정직한 지표다. 좋은 미술관이 도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여러 사례가 증명한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데이비드 호크니전으로 37만 명을 불러 모았고, 대구 간송미술관의 개관전에는 22만 명이 방문했는데 그중 열에 넷이 타지에서 찾아온 관람객이었다. 이렇게 미술관은 시민을 불러 모을 뿐 아니라, 외지인을 도시 안으로 끌어들이는 힘을 가진다. 미디어아트관이 품지 못하는 것들 2022년 문을 연 울산시립미술관은 울산 최초의 공공미술관이자 전국 공공미술관 가운데 처음으로 실감 미디어아트 전용관을 갖춘 공간이다. 산업과 기술의 도시에 디지털·실험미술을 전면에 내세운 선택은 분명 시대의 감각을 읽은 것이었다. 다만 한 분야에 깊이 집중한 그 정체성은, 다른 분야의 전시 앞에서 한계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울산시립미술관은 이건희 컬렉션 순회전에서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등 한국 근현대 거장의 작품을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시민들은 긴 줄을 서서 명작을 만났다. 거장전을 향한 울산의 갈증은 이미 충분히 확인된 셈이다. 문제는 그런 전시를 한 번 여는 일이 아니라, 상시적이고 안정적이며 품격 있게 담아내는 일이다. 미디어아트에 최적화된 공간이 대형 회화전을 지속적으로 수용하기에는, 그 우선순위와 조건이 애초에 다른 곳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거장들의 명작은 수많은 색의 층과 붓질의 결, 화가의 시간과 고뇌가 응축된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결과물이다. 그런 작품은 긴 벽면과 높은 천장, 넉넉한 전시실과 안정적인 조명, 항온·항습의 보존 환경을 요구한다. 좋은 미술관은 ...

고래의 바다에 핀 꽃, 장생포 수국마을

  울산 장생포 수국마을 야경 이미지 (자료: 울산 남구청) 도시재생, 쇠퇴한 공간에 숨을 불어넣다 오늘날 전국의 수많은 도시에서 '도시재생'이라는 이름의 변화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 도시재생 ]이란 인구 감소나 산업 구조의 변화, 무분별한 확장으로 인해 활력을 잃고 쇠퇴한 지역을 단순히 허물고 새로 짓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민들의 자치 역량을 강화하고, 지역이 품은 역사와 문화 자원을 새롭게 발굴하며, 그곳만의 차별화된 매력을 도입하여 경제·사회·환경 측면으로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는 숭고한 과정이다. 울산 역시 남구 삼호동 도시재생 사업을 비롯하여 지자체의 특성을 반영한 다양한 사업들을 완료했거나 현재 진행하고 있다. 쇠퇴한 지역에 다시 온기를 불어넣기 위해 투입되는 막대한 정책적 노력과 예산 중에는 성공적인 결실을 본 사례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실패로 돌아간 사례 역시 적지 않다. 도시재생 사업의 성공 여부는 사업의 유형이나 투입된 예산의 규모보다,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의지와 관련 기관의 일관된 지원, 그리고 다른 지역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차별화된 특성을 얼마나 단단하게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국내 유일의 '고래문화특구'인 장생포는 혁신적인 변화를 통해 도시재생의 지속 가능성을 증명해 보이는 매우 고무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수국, 장생포의 새로운 경쟁력이 되다 장생포는 과거 고래잡이 금지에 따른 수산업의 쇠퇴와 인근 국가산업단지 조성으로 인한 지역 발전의 한계, 그리고 주거 환경 악화라는 무거운 과제를 안고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도된 장생포 도시재생 사업은 지역의 강력한 정체성인 '고래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변주함으로써 소멸해 가던 지역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런데 최근 장생포는 또 다른 창의적인 변신으로 전 국민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바로 '수국마을 장생포'라는 매혹적인 발상이다. 수국은 비단으로 수를 놓은 것 같은 둥근 꽃이라는 의...

문화도시의 자부심, 울산 콘서트홀의 필요성

울산시립교향악단을 위한 울산 콘서트홀 상상 이미지 (Designed by Spacecreator) 고별 연주가 남긴 깊은 울림 2023년 12월 22일, 울산문화예술회관 공연장에 울려 퍼진 울산 시립교향악단의 마지막 곡은 요제프 하이든의 교향곡 45번 ‘고별(Farewell)’ 이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자주 연주되는 곡이지만, 이날의 연주는 유독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지난 6년간 울산 시립교향악단의 예술감독 겸 지휘자로 활약하며 울산의 클래식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니콜라이 알렉세예프의 마지막 ‘고별 지휘’였기 때문이다. 그의 지휘 아래 울산 시립교향악단은 수준 높은 음악을 시민들에게 선물하며 문화도시 울산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각 도시를 대표하는 교향악단은 그 도시의 문화적 자부심이자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로 인식된다. 세계 3대 교향악단으로 일컬어지는 뉴욕 필하모닉, 베를린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단순히 음악 단체를 넘어 그 도시의 문화적 차별성과 우월성을 나타내는 표상과도 같다. 그리고 이런 거장들의 연주를 완성하는 것은 연주자의 실력만큼이나 중요한, 소리를 담아내는 ‘그릇’인 콘서트홀이다. 세계적 콘서트홀의 건축적 유산 매년 새해 첫날, 오스트리아 빈의 ‘황금홀(Golden Hall)’에서 열리는 빈 필하모닉의 신년 음악회는 전 세계 음악 애호가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축제다. 이 공연장은 당대 최고의 건축가 테오필 한센이 고대 그리스 신전을 모티브로 설계한 직사각형의 공간으로, 화려한 신고전주의 장식과 풍만하면서도 명료한 자연 음향으로 유명하다. 황금홀에서의 연주 실황은 전 세계로 생중계되며 빈을 세계 최고의 문화도시로 알리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된다. 반면, 베를린 필하모니의 연주홀은 기존의 정형화된 틀을 깨뜨린 혁신적인 구조로 주목받았다. 건축가 한스 샤룬은 무대를 건물 중앙에 배치하고 객석을 경사지에 조성된 포도밭 형태처럼 16개 구역으로 나눈 ‘빈야드 스타일(Vineyard Style)’을 선보였다. 음악을 공간...

도시의 품격을 비추는 거울, 디자인과 건축

디자인과 건축이 바꾸는 울산의 미래 예상 이미지 (Designed by Spacecreator) '신사의 품격'이 던진 화두 몇 년 전, 많은 이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신사의 품격'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다. 나는 그 드라마의 남성 주인공 직업이 건축가라는 점에 흥미를 느껴 조금 더 관심을 두고 지켜보았던 기억이 있다. 극 중의 달콤하고 쌉쌀한 서사도 흥미로웠지만, 나의 마음을 더 강력하게 끌어당긴 것은 드라마의 제목이 던진 근본적인 물음이었다. 과연 '신사의 품격'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말이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신사(紳士)란 사람됨이나 몸가짐이 점잖고 교양이 있으며 예의 바른 남자를 의미한다. 또한 품격(品格)은 사람의 바탕과 타고난 성품, 혹은 사물에서 느껴지는 고귀한 품위를 뜻한다. 나는 이 정의를 접하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나는 과연 신사인가? 그리고 나는 그에 걸맞은 품격을 갖추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이 물음에 자신 있게 답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세상을 보아도 진정한 신사를 만나기 힘들고, 품격 있는 행동을 목격하기조차 무척이나 어려운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 명의 디자이너로서의 시선으로 바라본 울산 건축과 울산 도시디자인은, 울산 미래에 어떤 품격을 새겨 넣을 수 있을까? 도시라는 드라마의 주인공, 시민 개인의 품격에 대한 고민은 자연스럽게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도시의 품격으로 이어진다. 당시 새롭게 임기를 시작했던 울산시장은 시정 목표로 '품격 있고 따뜻한 [ 창조도시 ] 울산'을 내세웠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7대 비전 중 하나로 품격 있는 [ 문화도시 ] 울산을 제시한 바 있다. 이는 마치 '울산의 품격'이라는 제목의 새로운 드라마가 4년이라는 긴 여정을 시작한 것과 같았다. 중요한 것은 이 드라마의 연출자가 시장이라면, 실제 극을 이끌어가는 ...

산업 위에 피어난 정원도시 울산

2028년 울산국제정원박람회 예상 이미지 (자료: 울산시) 새로운 미래를 향한 울산의 담대한 전환 울산은 현재 2028년 국제정원박람회(International Garden Expo) 유치를 통해 명실상부한 ‘정원도시’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이는 과거 대한민국의 고도성장을 견인했던 산업 도시의 정체성을 넘어, 자연과 인간이 유기적이고 조화롭게 공존하는 도시를 구현하려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이다. 정원도시는 단순히 도시를 아름답게 꾸미는 환경미화의 차원을 넘어, 환경 보전과 삶의 질 향상을 동시에 고려하는 현대 도시 디자인의 핵심 개념이자 [ 미래 도시 ]가 나아가야 할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태화강 국가정원의 변신은 울산 미래가 정원도시로 나아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전조이며, 2028 울산 국제정원박람회는 그 가능성을 세계에 알릴 무대다.  디자이너로서의 시선으로 바라본 울산의 정원도시 전환은, 울산 미래에 어떤 새로운 품격을 새겨 넣을 수 있을까? 에베네저 하워드가 꿈꾼 도시의 이상형 정원도시라는 개념은 19세기 말, 영국의 도시계획가 에베네저 하워드(Ebenezer Howard)에 의해 처음 제안되었다. 당시 산업혁명의 여파로 급격히 진행된 도시화는 인구 과밀과 심각한 환경 오염, 그리고 열악한 주거 환경이라는 사회적 난제들을 초래했다. 하워드는 이러한 도시의 부작용과 농촌의 고립성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정원도시를 구상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내일: 진정한 개혁의 길(Tomorrow: A Peaceful Path to Real Reform)』을 통해 도시와 자연이 조화롭게 통합된 생활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가 제안한 정원도시는 농촌과 도시의 장점을 결합한 ‘전원도시(田園都市)’이자, 도시 내부에 풍부한 공원과 녹지를 조성한 ‘정원도시(庭園都市)’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 개념의 핵심적인 특징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충분한 녹지와 공원을 조성하여 도시민에게 쾌적한 환경과 심리적 안정감...

울산 산업단지 경관디자인의 중요성

HD현대중공업 산업경관디자인 개선 제안 이미지 (Designed by Spacecreator) 울산의 이중적 이미지와 인식의 개선 ‘산업 도시 울산’이라는 명칭 안에는 상반된 이미지들이 복잡하게 중첩되어 있다. 한편으로는 눈부신 도시 발전과 높은 소득 수준이라는 긍정적인 인식이 자리 잡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공해와 위험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다. 특히 이러한 인식은 울산 시민이 느끼는 자부심과 외부인이 바라보는 시선 사이에서 상당한 온도 차를 보인다. 사실과 다르게 고착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고 도시의 품격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도시 경관디자인을 통한 이미지 개선은 가장 실제적이고 효과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핵심적인 방법의 하나다. 시각적 인지 대상으로서의 경관디자인은 그 공간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즉각적이고 실증적인 인식과 기억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특히 도심 속에 거대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HD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가 자리 잡은 울산 산업단지의 경관은 도시 전체의 인상을 좌우하며, 도심 야경과 보행 환경에까지 직접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산업단지의 경관을 어떻게 디자인하느냐는 울산의 전체 이미지를 결정짓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디자이너로서의 시선으로 바라본 울산 산업단지의 경관은, 울산 미래에 어떤 경관의 품격을 새겨 넣을 수 있을까? 도심과 공존하는 울산 산업단지의 특수성 울산은 산업단지가 도시 외곽에 분리되어 있거나 중소 규모 시설이 주를 이루는 다른 도시들과는 전혀 다른 공간적 특성을 보인다. 울산은 대규모 산업 시설과 산업단지가 도심 한복판에 공존하고 있으며, 주거 공간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따라서 산업단지의 경관적 특성은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직접적이고 큰 영향을 미치며, 곧 울산의 도시 이미지 그 자체가 된다. 건축에서는 건물의 전면부를 ‘파사드(Facade)’라고 부른다. 도시를 구성하는 수많은 [ 건축물의 파사드 ]...

도시의 일상을 담는 트램 정류장 디자인의 중요성

울산 도시철도 트램(Tram)정류장 예상도 (Designed by Spacecreator) 새로운 시대, 울산의 첫 인상을 디자인하다 울산 도시철도의 새로운 시대가 마침내 그 서막을 올리고 있다. 도심의 노면을 가로지르며 시민들의 발이 되어줄 트램(Tram) 1호선의 착공과 2호선의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 사업 선정은, 단순히 교통 기반 시설이 확대되는 것을 넘어 울산이라는 도시 이미지를 새롭게 정립하고 혁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특히 지하철 중심의 기존 도시철도 시스템을 운영하는 다른 대도시들과 달리, 울산이 세계 최초로 ‘수소 전기 트램’을 전면 도입하는 것은 울산이 축적해 온 독보적인 기술력과 문화적 긍지, 미래를 향한 확고한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리는 일이다. 이제 우리는 이 혁신적인 하드웨어를 계기로, 한층 고도화된 도시 브랜딩과 세련된 시민 경험 디자인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트램 1호선의 본격적인 도입은 단순한 교통 인프라 확장을 넘어 도시의 여러 상징과 공간 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업탑 이전 문제] 이며, 이는 트램 노선확보를 위한 불가피한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디자이너로서의 시선으로 바라본 울산 트램 정류장의 디자인은, 울산 미래에 어떤 품격을 새겨 넣을 수 있을까?  트램은 단순한 이동 수단의 경계를 넘어 울산의 도시 구조와 시민들의 생활 방식 전반에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그중에서도 트램 정류장은 시민들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머무르며 소통하는 접점(Touch Point)이자, 도시의 경관과 이미지를 형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공공디자인 요소다. 따라서 우리는 시민의 일상과 가장 밀접하게 닿아 있는 트램 정류장을 창의적이고 차별화된 디자인으로 구축함으로써, 울산이 지향하는 새로운 도시 가치를 시각적으로 구현해 내야 한다. 세계가 보여주는 정류장의 진화와 가치 트램과 지하철, 버스를 아우르는 정류장 디자인의 성공적인 해외 사례들은 울산이 나아가야 할 디자인적 목표를 분명하게 제시해 준다. 독일 하노버...

다시 세우는 공업탑, 다시 뛰는 울산의 심장

  울산대공원 광장으로 이전한 공업탑 예상도 (Designed by Spacecreator) 시대의 요구와 상징의 거취 울산의 미래 도시 공간을 선도할 도시철도 1호선(트램) 건설이 본격화하면서, 지난 반세기 넘게 울산의 상징으로 군림해 온 공업탑의 거취가 시민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원활한 교통 흐름과 트램 노선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해 기존의 공업탑 로터리를 회전교차로에서 평면교차로로 변경하는 것이 불가피해졌고, 이에 따라 공업탑의 이전은 이제 선택이 아니고 반드시 해결해야 할 필수 과제가 되었다. 공업탑은 단지 교통 시설이 아니라 반세기를 견뎌온 울산 랜드마크였고, 이번 이전 결정은 울산이 새로운 도시 정체성을 디자인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도시 변화의 흐름 속에서, 공업탑의 새로운 위치와  형식은 [ 트램 정류장 디자인 ]처럼 시민의 일상과 만나는  공공 공간 디자인의 큰 그림 안에서 함께 고민되어야 한다. 공업탑은 단순한 시각적 조형물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절대 빈곤을 벗어나고자 했던 대한민국의 강렬한 의지이자, 태화강의 기적을 일구어낸 수많은 노동자의 땀방울이 서린 상징이다. 그렇기에 공업탑의 역사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현재의 위치에 존치하거나, 혹은 형체를 원형 그대로 옮겨야 한다는 시민들의 주장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1967년에 세워진 이 콘크리트 구조물은 이미 58년이라는 긴 세월을 견디며 심각하게 노후화된 상태다. 전문가들의 정밀 진단 결과 역시, 원형을 유지한 채 강제로 이전하는 것은 붕괴 위험으로 인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내렸다. 이제 우리의 고민은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라는 과거형 질문을 넘어, ‘어떻게 계승하고 발전시킬 것인가’라는 미래형 과제로 전환되어야 한다. 기억의 계승: 물질을 넘어 정신으로 원형을 그대로 옮기지 못하고 새로 짓는 것에 대해 ‘혼이 없는 모조품’이 될 것이라 우려하는 목소리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공업탑의 진정한 가치가 어...

옥상이 도시의 얼굴이 되는 시대 — 울산 UAM과 제5입면

UAM(Urban Air Mobility)에서 내려다본 울산의 미래 경관                                          (Designed by Spacecreator) 도시 제5 입면의 중요성 김포공항에서 출발해 울산공항에 착륙하는 항공기의 창가 좌석에 앉아 도시를 내려다보면, 다른 도시 공항에 착륙할 때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특별한 도시의 얼굴을 만나게 된다. 이것이 도시의 다섯 번째 얼굴, ‘제5 입면(Fifth Facade)'이다. 도시의 제5 입면이란 하늘에서 내려다본 도시의 모습, 또 다른 도시 경관이다. 건물의 정면, 좌측면, 우측면, 후면과 달리 우리가 일상에서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바로 그곳이다.  곧 도래할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 Urban Air Mobility) 시대에는 시민 누구나 매일 마주하게 될 풍경이며, 옥상 디자인이 도시 경쟁력을 좌우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도시경관의 패러다임 전환 지금까지 우리는 도시의 경관을 논할 때, 거리를 걷는 보행자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건물의 외관이나, 자동차를 운전하며 스쳐 지나가는 가로변의 풍경을 [ 경관디자인 ]의 전부라고 여겨 왔다. 하지만 이제, 도시를 바라보는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지난 2025년 9월, 울산은 국토교통부가 야심 차게 추진하는 4,300억 원 규모의 '한국형 도심항공교통(K-UAM) 국가연구개발사업' 통합 실증지로 최종 선정되었다. 2027년부터 2030년까지 본격적인 실증 사업이 진행되고, 길천산단과 KTX울산역, 태화강역을 하늘길로 연결하는 '광역교통 서비스'가 구현되면, 많은 울산시민이 상공에서 우리 도시를 내려다보는 일상을 경험하게 된다.  울산 제5 입면의 현실과 선진 사례 바로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직...

BIG의 현대 하이테크센터가 빚어낼 도시의 표정

비야케 잉겔스 그룹(BIG)이 설계한 현대차 울산 하이테크센터 투시도 (자료: 울산시) 행복한 우연과 기다려온 소식 나는 지난 4월, 경상시론을 통해 "울산에도 세계적 수준의 랜드마크 건축이 필요하다"라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당시 글의 끄트머리에서 세계적인 거장의 건축물을 실현하는 데 공공기관이 마주하는 여러 제약을 언급하며, 울산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바라는 희망을 담았다. 그런데 기고 후 불과 한 달 남짓 만에 전해진 '울산 하이테크센터' 건립 소식은 그야말로 매우 행복한 우연이자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번 발표는 단순한 산업시설 건립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울산 건축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며, 미래의 울산 랜드마크가 어디에서 탄생할지를 결정짓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특히 기사가 보도되기 바로 전 주,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해당 건축가 그룹의 영상을 시청하며 토론했던 터라 그 감회는 더욱 묘하고도 특별했다. 디자이너로서의 시선으로 바라본 BIG의 울산 하이테크센터는, 울산 미래에 어떤 랜드마크의 품격을 새겨 넣을 수 있을까? 2027년 완공을 목표로 울산 남구 여천동에 들어설 '울산 하이테크센터'는 덴마크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비야케 잉겔스(Bjarke Ingels)가 이끄는 BIG(Bjarke Ingels Group)이 설계를 맡았다.  BIG은 같은 시기에 진행된 [ 울산 세계적 공연장 국제 설계 공모 ]에도  참여하여, 울산이라는 도시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주고 있다. 울산의 대표 기업인 현대자동차가 약 2,500억 원을 투자하여 건립하는 이 공간은 '친환경 미래 모빌리티 복합 공간'을 지향한다. 단순한 정비 공장을 넘어 전기차 등 친환경 자동차의 진단과 관리는 물론, 첨단 기술 기반의 맞춤형 시승과 체험이 이루어지는 미래형 자동차 경험의 장이 될 전망이다.  고정관념을 깨는 건축가, 비야케 잉겔스 건축 그룹 BIG을 설립한 비야케 잉겔스는 현대 건...

경이로운 공간, 울산 세계적 공연장의 비전

  울산 세계적공연장 본 심사에 참가하는 설계안   (자료: 울산시,  문박디엠피, BIG, 더시스템랩, 장누벨(시계방향) ) 울산 문화의 연대기를 다시 쓰다 울산의 문화적 위상을 근본적으로 바꿀 새로운 울산 공연장의 웅장한 밑그림이 마침내 공개되었다. 이는 단지 건물 하나의 등장이 아니라 울산 문화도시 정체성을 새로 쓰는 사건이다.국제적인 명성을 지닌 [ 비야케 잉겔스 그룹(BIG) ]과 장 누벨, 그리고 한국 건축의 자부심인 문박디엠피와 더시스템랩이 제안한 네 가지 설계안은 저마다 독창적인 조형미와 공간 철학을 뽐내며 시민들의 뜨거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약 5,000억 원의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이번 프로젝트는 예산 규모 면에서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서울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버금가는 대규모 사업이다. 건축 초기, 파격적인 조형성과 막대한 비용 탓에 거센 비판을 받았던 DDP가 현재는 연간 2,000만 명이 찾는 대한민국 대표 문화 공간으로 우뚝 섰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울산의 세계적 공연장 선정 과정이 단순히 하나의 건물을 짓는 일을 넘어, 도시의 미래 경쟁력을 결정짓는 얼마나 중차대한 과업인지를 웅변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공연장이 진정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화려한 외관이 주는 시각적 충격을 넘어, 반드시 직면해야 할 본질적인 과제가 있다. 건축은 외부에서 감상하는 박제된 오브제가 아니라, 그 안에서 사람과 예술이 유기적으로 교감하며 숨 쉬는 생명력 있는 공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보여주는 건축'에서 '경험하는 공간'으로 그동안 수많은 건축 공모전은 랜드마크로서의 상징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당위 때문에 외부에서 바라보는 외형, 즉 익스테리어(Exterior)를 평가의 최우선 기준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정작 시민과 예술가가 깊은 공감을 나누는 곳은 건축물의 매끄러운 표피가 아니라 그 내부 공간이다. 특히 공연장처럼 관객이 오랜 시간 머무는 공간에서는 내부에서 외부를 바라볼...

무너진 거인, 디트로이트(Detroit City)의 교훈

  도시재생으로 활기를 찾아가는 디트로이트시의 모습 (Designed by Spacecreator) 상상이 현실이 되는 참담한 순간 얼마 전, 자동차 도시의 상징적 중심지인 디트로이트에서 대학 생활을 하는 큰 아들의 전화를 받았다. 사용 중인 자동차의 완충 장치가 고장이 나서 수리 비용이 급히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아들은 본인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피력하며, 디트로이트의 도로 상태가 너무 엉망이라 예상보다 빨리 파손된 것 같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지난 4년 동안 아이를 통해 디트로이트시의 참담한 상황에 대해 누구보다 상세하게 들어왔지만, 한때 세계 최고의 영화(榮華)를 누렸던 도시의 기반 시설이 그토록 철저히 파괴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믿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후 나는 몇 가지 이유로 직접 디트로이트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중 중요한 동기 중 하나는 오랫동안 상상으로만 그려오던 도시의 몰락을 현실로 직접 확인하고 싶은 욕구였다. 공항에 도착해 도심으로 향하며 마주한 풍경은 아들의 말이 결코 변명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게 했다. 그동안 내가 가졌던 상상력의 빈곤함과 판단력의 미숙함을 처절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동차의 도시에서 사라진 안락함 디트로이트의 도로는 단 한 블록조차도 제대로 포장이 유지되고 있는 곳이 없었다. 도로 곳곳에 입을 벌리고 있는 포트홀(pothole)들로 인해 차량은 정상적인 주행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지뢰밭과 같은 포트홀을 피하고자 차선을 넘나들며 갈지자 운전을 해야만 했고, 특히 어두운 밤길에 차를 몬다는 것은 생명을 담보로 한 거대한 모험처럼 느껴졌다. 그나마 도로를 달리는 차량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다행이라 여겨야 하는 현실은 자동차의 도시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만드는 서글픈 풍경이었다. 가로 주변의 경관은 더 충격적이었다. 수십 층 높이의 웅장한 빌딩과 화려했던 호텔들은 텅 비어 있었고, 크고 작은 건물의 외벽은 정체 모를 낙서로 가득했다. 깨진 창문과 파손된 잔해들...